- → 문학비평가 최다영의 사명을 찾아서 리뷰
Vol.3
2025-12-22
시뮬레이터로서의 시
― 동시대 시의 게임 설계와 매체-되기 욕망
나는 이 텍스트를 한 편의 시로 읽기를 제안한다. 나아가 이 텍스트 읽기에 참여하는 행위를 일종의 게임 플레이로 보기를 제안한다. 《사명을 찾아서》는 맥락과 구조, 발화 방식 등의 의미화를 요구하는 표상의 배치라기보다는 프로그래밍된 내부 세계를 가동시키는 절차적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게임이란 제한된 환경과 구조물, 규칙에 따라 고투하도록 조직된 전략 구조의 루틴으로, 반복 실행을 전제한다. 무엇보다도 게임 시뮬레이션 세계 속에서는 화자의 자리가 비어있는 채 “플레이어의 입력을 기다리” ¹ 고 있는데, 이는 성립 조건으로 화자라는 존재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문학 장르와의 가장 큰 변별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절차적 텍스트로서의 시는 매체-되기를 의도함으로써 이 근본적인 한계를 가로지른다. 또한 병렬적인 기억과 사고체계를 반영하기에 선형적으로 읽어나갈 필요도 없다. 이때 시인은 게임 디자이너라 할 수 있으며, 이제 이러한 텍스트를 미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오늘날 시인의 새로운 역할이다. 그렇기에 시를 읽는 새로운 비평적 틀 또한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이렇듯 《사명을 찾아서》는 오늘날 시는 또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즉 오늘 같은 불황에 출판사를 왜 설립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놓는 게 아니라, 어떤 출판사가 있을 수 없는가에 대한 다채로운 시나리오들의 엮임으로 존재한다. 각각의 출판사는 사명(社名)을 사명(使命)처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한 제각각의 개성을 지니는데, 이는 출판사라면 절대 하지 않을 사건들로 이어진다.
이 책의 이용 방법이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다면 아마 이렇게 적혀 있을 것이다. 게임 속으로 진입하기 위해 우선 일시적 행위성 ² 에 몰입해보자.
step 1. 너는 지금 막 ‘사명을 찾아서’라는 게임에 접속했고, 각각의 목차는 가상의 사명(社名)이자 네가 옮겨다닐 수 있는 서버들이다.
step 2. 순서에 따라 읽어나갈 필요가 없으므로, 그중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보라. 혹은 호그와트 모자처럼, 딱 맞는 출판사를 매칭해줄 수도 있다.
step 3. 해당 서버로 이동하듯 각각의 사명을 클릭하면, 그 출판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게임적 에피소드가 마치 n번째 시뮬레이션처럼 시행된다. 다시 그 안에서 일종의 사전을 획득하거나 또 다른 시뮬레이션을 가동할 수도 있다.
가령 너는 목차에서 국립출판사를 발견하고 35쪽으로 이동한다. 곧바로 맞닥뜨리는 건 “국립출판사는 DD구 □□동 △△빌라 건물의 1층에 있었다”라는 문장이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익명의 ‘나’의 시선은 바로 너의 시선이 된다. ‘나’라는 비어 있던 플레이어의 자리는 너의 페이지 펼침과 동시에 가동된다. 앉아 있던 직원이 ‘나’를 맞이한다. 대표가 부재중이므로 ‘나’는 손님용 공간으로 안내받고, 오랜 시간이 지나 돌연 “문이 저절로 쾅 하고 닫”힌다. ‘나’는 일어나 안에서부터 방의 문을 여는데, 직원은 아까와 같은 모습으로 ‘나’를 보고 있고 “어째선지 나는 대표님이 지금 안 계신다고 말”한다. 이제 ‘나’는 직원이다. 역할을 넘겨받았다.
2차원 평면 위의 렌더링. 유리관과 배드베드북스는 종이 출판물을 만든 게 아니라 가상의 시뮬레이터라는 매체를 만든 것이다. 이러한 시들은 시적 대상이나 정황을 묘사하는 걸 목적으로 하지 않으므로 해석을 거부하고 그 자체 매체로 여겨지길 원한다. 더 이상 시는 주체의 발화와 그 형식이 아니라 비워진 주체 자리를 반복적으로 실행시킬, 대기하는 명령어다. 오늘날 시가 자신을 매체로 만들고자 하는 지향은 낯선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제 시는 놀이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놀이가 통과할 수 있는 ‘텅 빔’이 되기를 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들을 읽는 독법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흔히 우리는 시를 읽을 때 표상들의 연결 관계를 맥락화하고 정황을 논리적으로 구조화하여 의미를 도출해낸다. 화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십 개의 시뮬레이터 캡슐들이 들어찬 이 공간에 진입하는 순간, 비워진 주체의 자리는 독자-플레이어가 그 자리에 자신을 대입할 장소가 된다.
그런 한편 “데이터의 세계에서는 작성자 또는 사용자가 패턴을 생성하거나 인식하는 곳에서 의미가 출현” ³ 하게 되는데, 《사명을 찾아서》에서도 이처럼 공통된 패턴들을 추출하여 무수히 많은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거울 장치로, 여러 서버에 흩뿌려져 있듯 수많은 출판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가령 눈보라 출판사에서 왜 울고 있는지 묻고 답하는 것은 모두 자신이므로 거울을 마주보고 있는 상황이라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특정한 컨셉이나 세계관에 기반해 축조되고 절차적 텍스트로 짜인 시는 사변 시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다. 분리된 감각을 확보하기 어려운 초연결시대, 개인의 물리적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는 시대에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사변적 영역에서나마 넓혀가는 것으로서 이러한 시적 경향은 독특한 의의를 확보한다. 매체 미디어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밈적 사고에 잠식되어버리는 대신 자신만의 매체 미디어를 창안하고 내적 논리를 축조‧확장해가는 일은 오늘날 고유한 사고능력을 지키는 하나의 대응 방식이 될 수 있다. 이렇듯 ‘없음의 있음’에 대한 무수한 가정들은 본래 있음보다 없음의 목록이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운 것임을 알게 한다. 우리는 없기 때문에 가질 수 있고 불가능하기에 꿈꿀 수 있다.
1) 이언 보고스트, 《단위조작》, 안호성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25, 187쪽.
2) C. 티 응우옌, 《게임: 행위성의 예술》 , 이동휘 옮김, 워크룸프레스, 25쪽.
3) 《단위조작》, 58쪽.
최다영. 2022년 「문학과사회」 평론부문에 당선되어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김춘수와 이승훈 시론 비교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포스트모더니즘 문학과 과학기술 페미니즘에 주된 관심을 갖고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